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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통일의 길이 속히 열리기를 기원하며
작성일 2008-12-24 16:36:05 조회 2746
글쓴이 이병필 목사 (등대복지회 울산지회장) 방북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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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우리가 심양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함을 느꼈다. 우선 심양 비행장이 규모가 크고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것과 수많은 여행객들이 줄을 이어 있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한  십여 년 전 백두산을 가기 위하여 심양비행장을 이용 할 때는 구 건물로써 초라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드디어 오후 3시 30분 평양행 고려 항공기에 몸을 실었을 때 다소 설레임과 긴장감을 느꼈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우리는 오랫동안 기도하고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평양행 비행기는 100여명을 태운 소형 비행기였지만 평안함과 안전함을 느낀 것은 비행기류가 우리를 위하여 도우는 탓일까? 심양에서 비행시간 50분. 드디어 평양 순항비행장에 도착했을 때에 동남아의 어떤 작은 비행장에 내릴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으나 거기서 느낀 것 같은 긴장감은 없었다.

 

우선 같은 민족이고 말이 통한다는 데에 안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엑스선 검사대를 통과하는 동안 내 짐은 검사원에게 걸리고 말았다. 짐 속에 성경 한 권과 시집 한 권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검사원은 검사대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무슨 책인지 풀어보자고 하였다. 나는 태연하게 나는 목사인데 성경책 한 권을 넣어 왔다고 대답했다. 검사원은 미주 동포냐고 물었고 나는 남쪽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조국에는 몇 번째냐고 물었고 나는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책 두고 갈 것 아니지요?’라고 물었고, 나는 습관처럼 성경을 가지고 다니는데 두고 갈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짐을 풀지 않아도 된다고 가지고 가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평양에 첫 발을 들어놓게 되었고, 거기에는 우리를 초청해 준 민족화해협의회에서 나온 안내원이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우리는 대동강 변에 있는 47층의 양각도 호텔에 짐을 풀었고, 그 날 저녁에 그들은 우리를 위하여 만찬을 베풀어 주고 친절하게 배려해 주었다. 이 모두가 등대복지회 신영순 상임이사와 조일 국장이 수년 동안 북쪽을 왕래하면서 신뢰와 친면을 쌓아왔기 때문에 우리가 평안하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식사기도를 함께 하였는데 우리가 북쪽 당국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격스러웠고, 우리를 쓰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계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평양의 첫 밤을 지냈다.

 

다음 날 등대복지회를 통하여 조선장애자보호련맹 건물 옆에 세워진 장애인콩우유빵공장을 방문하였다. 이 공장은 분당 가나안 교회가 기계를 보내 공장을 차려주고 후원하고 운영해 온 공장으로 가나안교회 담임 목사이신 장경덕 목사님 내외분과 특별히 울산에서 함께 온 강천형 집사님과 함께 둘러 볼 수 있었다. 강 집사님은 20년 동안 직접 제빵 공장을 경영해 온 분이라서 북쪽에 빵 공장을 세우는데 무엇을 어떤 규모로 세울지에 대하여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우리는 거기서 만든 빵을 직접 시식하였고 빵을 만드는 과정도 지켜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조선장애자보호련맹 책임자와 직원을 만났는데 거기서는 이미 북측이 제공한 부지 12,000 평방미터 위에 장애인종합회복센터를 건축하는 일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업은 막대한 돈이 들고 따라서 유력한 후원자가 필요한 사업이라 우리는 그 대지 위에 서서 함께 손잡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북쪽 당국자들이 우리 등대복지회 신영순 이사님을 믿고 존경하고 있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꼈고, 그들은 신 이사님을 신 어머니라고 불러주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민화협에서 나온 안내원들과 함께 평양의 명소를 관람할 수 있었는데, 특히 5. 1 광장에서 본 아리랑 축제와 금성학원에서 예술을 배우는 학생들의 공연이 감동적이었다.

 

남포관문의 거대한 물막이 제방을 볼 수 있었고, 동명왕릉에서는 세계 유네스코에 등제된 석조 예술물을 볼 수 있었다. 모란봉 을밀대를 살펴보고 옥류관의 냉면도 맛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를 친절히 안내해 주고 배려해 준 북쪽 안내원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더욱이 매 식사 때 마다 우리에게 식사 기도를 허락해 주고 함께 기도에 동참한 것은 큰 배려였다.

 

가장 감격적인 일은 봉수교회에서 드린 주일 예배였다. 봉수교회에서는 아침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특히 이 날에는 북쪽을 같이 방문한 홍정길 목사님 일행과 함께 예배드렸다.

 

담임 목사인 손효순 목사는 사무엘 하 9장에 있는 말씀을 중심으로 다윗왕이 요나단의 후손인 므비보셋을 보살펴 주는 내용의 다윗왕과 요나단의 우의에 대하여 설교했다. 성가대도 우리와 같고 목사 까운도 같고 설교와 찬송도 꼭 같다. 우리는 성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를 받았다. 찬송가 220장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 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되어...>함께 부른 찬송가에 목이 매여 우리는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북쪽 교인들과 손잡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손효순 담임 목사님과 원로 목사이신 이성봉 목사님과 함께 촬영하고 인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모든 여행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자유롭게 우리의 사업장을 방문하고 북쪽 안내원들의 친절한 배려와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그동안 70여 차례에 걸쳐 북쪽을 드나들면서 북쪽 당국자들과 친면을 쌓아온 신영순 이사님의 수고의 덕분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그의 노고에 힘입어 이렇게 쉽게 우리의 사업장을 방문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등대복지회가 북쪽의 어려움을 돕는 일에 더욱 힘을 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9월 24일 우리는 7박 8일의 방문 여행을 마치고 다시 순항 공항을 떠나 심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하늘을 날아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들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하신 것은 이러한 우리들의 사정을 미리 아시고 배려하신 것일까? 원래 궁창은 공중에 나는 새를 위하여 지어 주셨다. 새가 자유롭게 나는 그 하늘을 우리들은 자유롭게 날 수가 없다. 다만 새들은 오늘도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서 남북을 넘나들고 있지 않는가? 곧 가을이 깊어지면 수많은 철새들이 자유롭게 날아서 남으로 오겠지! 늘 새만 노래하다가 죽은 어떤 시인 생각이 났다. 실향민이었다. 달이라도 사무치게 밝은 밤이면 북으로 또는 남으로 자유롭게 나는 긴 철새의 행렬을 그는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그 실향민들도 낙엽처럼 한 잎 두 잎 지고 있다. 우리에게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통일의 길이 어서 속히 열리기를 간절히 기원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