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다이어리

등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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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필리핀 해외의료봉사를 마치고

작성자
lighthouse
작성일
2019-05-10 10:02
조회
6994
작성자: 이지은
작성일: 2012-03-26



늘 말로만, 사진으로만 보던 필리핀 해상 판자촌!

여자의사회와 동행한 필리핀 나보타스 시 의료봉사 현장은 나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낯 설은 풍경이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3년간 지원사업을 시행하게 되어 2차년에 접어든 나보타스시 해상판자촌의 풍경은
나에게는 이미 익숙하고 친근한 곳이었다.

사진으로 보았던 쓰레기마을..
태풍피해로 초토화된 집들..
사진으로 보았던 이재민 텐트촌과 열악한 환경들...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필리핀 어린이들의 해맑은 표정!!

2012년 1월 21~25일. 그렇게 나의 필리핀에서의 일정은 시작되었다.

사실 이번 의료봉사 활동을 준비하면서 약간의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 같다.
나란 인간은 원래 정신건강을 위해서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사고와 무념(?)을 추구하지만,
의료봉사 진행은 나에게는 첫 경험이었고 더더군다나 30여명이 넘는 대규모의 행사이다 보니
아무런 사고와 문제없이 마무리해야 된다는 중압감은 무의식중에 꿈으로 나타나 나를 짓눌르기도 했다. 하하

그렇게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시작한 나의 필리핀 의료봉사 동행 일정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에게 피곤함과 버거움 대신에 편안함과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첫 날.. 낯선 환경과 앞으로의 일들, 그리고 업무와 개인적인 일들로 누적된 피곤함은
나를 버겁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에서 만나는 필리핀 주민들의 순수한 웃음과 환영 인사에
제대로 받아주질 못한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삶의 여유가 없는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에게서 순수함은 조금씩 사라져가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았다. 그런 나의 무미건조함을 조금씩 촉촉하게 적신 것은
빈민촌 아이들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요즘 한국 사회는 정말 살기 힘들어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고용불안과 미래와 노후에 대한 불안함, 과열되는 경쟁구조는 사람들을 점점 인색하고 여유 없게 만들어가고 있다.

멀리 볼 것 없이 나의 가정을 보자. 애들 아빠는 과중한 회사업무와 경쟁 속에
매일 늦은 밤 퇴근을 하고 언제부터인가 애들은 평일에는 아빠의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렸고
일찍이라도 들어오는 날은 집안의 작은 축제(?)날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애를 보면서 경쟁사회에 뛰어들게 됨에 안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나마 우리 큰애는 다른 아이보다 덜 학원에 노출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매일이 버거워 보인다.
벌써부터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되는 현실이 엄마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없는 것을 불평하고 탓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인내할 줄 아는 필리핀 사람들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의료봉사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자유로움과 여유란 말인가!

이 글을 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떠올려보면,

필리핀 이재민 텐트촌의 열악한 환경, 태풍에 날아가 버린 해상판자촌..
옷이 너무나 낡아 봉재실 하나에 간신히 매달린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
머리 이와 서캐가 가득한 아이들의 지저분한 머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감사..

이재민 센터에서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있을 때 우리가 먹는 점심을 간절하게
뚫어지게 쳐다보던 주민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

나는 그들의 그런 눈길에도 허기진 배를 달래느라 묵인하며 먹는 것이 마냥
미안스럽고 그들과 나누지 못함에 죄스러웠다.

1차년도 사업결과 보고 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문가 평가시 평가위원이 한 말이 생각난다.
‘해외의료봉사 같은 행사는 일회성이고 또 그냥 보여주기식 이벤트 같은 행사라 사업에 별 도움도 안 된다.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가며 단 며칠의 의료봉사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의약품이나 기타 생필품을 지원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라던 다소 부정적이었던 시각...

그때 우리 국장님께서는 한국여의료인회(당시 주최)와 공동으로 주관한 의료봉사의 실적과 참가한 분들의 희생과 노고,
그리고 현지 주민들의 뜨거웠던 반응, 전폭적인 지지와 감사에 대해 설명하였고
단순한 이벤트행사 같은 것이 아님과 일회성이 아님을 역설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1회에 이어 2회.. 앞으로 몇 회의 의료봉사가 그 곳에서 실시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필리핀 나보타스시 해상판자촌 의료봉사는 단순한 일회성 봉사활동의 장소가 아니었다.

지나고나니 그 두려움과 스트레스는 보람과 성취감,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그 벅찼던 감동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미해지겠지만
나빴던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만 남기를 바란다.
그래서 만약 내년에 다시 이런 일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망설임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떠나올 때 Tulay 제니와 나보타스시 주민들에게 한 약속,
내년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