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다이어리

등대 스토리

등대 스토리등대복지회는 지구촌 이웃이 함께 잘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곳에 사랑과 희망의 빛을 비추고자 합니다.

말라위에서의 새로운 출발-변화를 기대하며..

작성자
lighthouse
작성일
2019-05-10 10:12
조회
5769
작성자: 박민영
작성일: 2014-04-08



“아중구 ~ 아중구~!”

오늘도 밖에 나가서 만난 꼬맹이들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백인을 일컫는 현지 말이라고 하는데 황인인 나도 이들 눈엔 흰 사람(?)처럼 보여 아중구라고 한단다.
눈을 마주치면 반갑다고 손을 흔드는 아이들이 대다수지만,
놀라서 냅다 도망가는 아이들도 있고 더러는 무슨 괴물을 본 듯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도 있다.

‘무섭게 생긴 걸로 따지면 너도 만만치 않은데!!’
언젠가 현지어가 능숙하게 된다면 몇몇 아이들에게는 꼭 저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곳에 온 지 약 4개월.

어릴 적부터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엄청난 이사와 전학을 반복했기에 어느 곳엘 가건
적응하는 일은 일등이라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말라위라는 나라에는 ‘과연?’ 이라는 물음표를 던져야 했다.
그 이름도 생소한, 또 무시무시한 아프리카 대륙 아니던가!

‘사진과 자료로 수도 없이 봐왔던 곳이니 별 다를 거 없겠지?’
‘말라리아 모기가 설마 외국인 피 좋아하겠어? 내 피는 맛없어 안 물거야.’ 등등.

아프리카에 간다고 하니 식인종한테 잡혀 먹는 거 아니냐며 농담 반 진담으로 걱정하는 가족과 주변인들에게는
‘지금이 어느 시댄데!’ 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 떵떵거렸지만,
사실 떠나는 날짜가 정해지고 나니 급 소심 해져 잠 못 이룬 날들도 더러 있었다.
깊은 부시에 들어가면 진짜 식인종이 나타나는 건 아닌가,
‘한국인 노처녀, 말라위 식인종에게 먹히다.’ 라는 기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닌가,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은 환경적인 동물이라더니,
빠른 속도로 이곳의 사람들과 환경에 적응하는 내 모습을 보면 가끔 나도 내가 놀라울 정도다.

아직 집 안팎에서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도마뱀과 내 일용할 양식을 탐하기 위해
어두운 밤마다 자취를 드러내는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엔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벽 5시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해 지기 전,
4시나 5시에 하루일과를 마감한다. 덕분에 이들의 스케줄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다보니
초기엔 다크써클이 발밑에 내려와 떠날 줄을 몰랐다.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다보니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져 잠들기도 하고,
한 밤 중에 눈을 떠 도마뱀, 바퀴벌레와 사투를 벌이기도 해야 했다.

그러나 매일 이른 아침 경쟁이라도 하듯 요상한 소리로 울어대는 닭들과 새소리에 눈이 떠지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가요보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현지 음악에 엉덩이가 들썩거리며,
밥보다 삶은 옥수수와 지글지글한 기름에 튀긴 감자가 더 맛있는 걸 보면
나는 요즈음 적응이란 숙제를 끝내고 이곳에서의 삶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하다.

제일 어려운 과제를 금방 해치운 것 같은 느낌이랄까.

2010년부터 작년까지 3년 간, 코이카의 국제빈곤퇴치기여금으로 시행됐던
등대복지회 말라리아 프로젝트가 끝나갈 즈음, 나는 한국에서 현지 직원이 보내온 보고서를 통해
우리의 지원을 받았던 마을 대표들과 주민들이 간곡히 사업철수를 반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원이 중단되면 그들은 말라리아라는 질병과 또다시 전면전을 벌여야 하며 승패는 불 보듯 뻔한 것이기에,
우리의 사업 종료 소식은 방패 없이 전쟁터에 나간 그들에게 곧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
2013년 8월, 국제빈곤퇴치기여금 사업의 종료 이후에도 등대복지회에서는 자체 재원으로 말라리아 클리닉을 운영해 오긴 했지만,
우리 단체 혼자 힘으로 수많은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중, 코이카에 신청한 말라리아 퇴치사업이 재선정되어,
2014년부터 2016년, 3년간 사업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본부도, 말라위 사업장도 한동안 잔치 분위기였던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

그동안 한국에서 현지 보고서와 자료들로만 그곳 소식을 들으면서 직접 현장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난 사업시 파견되었던 직원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새 직원 파견문제로 고민하던 중이었기에
나는 밑져야 본전(?)인 셈으로 그동안 혼자 고민 해 왔던 꿍꿍이 속(?)을 기회를 틈 타 슬쩍 내비치기로 했다.

“저 보내주세요! 잘 할 수 있어요~”

사실 뭘 잘하겠다고 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최소 3년간 장기체류할 직원을 파견해야 했기에 본부에서 무척 심사숙고 중이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가 가겠다고 하자 당황스러우셨는지 이사장님, 국장님 모두 쉽게 OK하시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하도 멋 부리기 좋아하고 요란스러웠던 내 모습을 많이 보셔서 그런지,
그런 거 다 포기하고 내가 아프리카에 얼마나 있을 수 있겠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셨다.
그러자 더더욱 오기가 생겼다.

“최대한 안 튀게 머리도 짧게 깎고, 얼굴도 시꺼멓게 구두약 칠하고 다닐게요.”
지킬 수 없었던 약속이었지만 일단 가고보자는 생각에 다소 과장된 다짐들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말라위 파견을 결정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등대복지회의 아프리카 사업장, 말라위 블랜타이어 북부지역 시가루(Chigaru)에서 시행 중인
‘말라리아 퇴치사업’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사실 여러 현지 인력들의 도움을 받아 시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곁에서 참관하는 정도이기에
일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다.
어쩌면, ‘일생에서 한 번도 경험 해 보지 못 할, 산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라는 직책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등대복지회 말라리아 보건소를 운영하고 있는 현지인 의료관계자들과 30명의 현지 청년 모니터 요원들이 30여개 마을,
8만 여명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성실히 그 역할을 수행 중이다.
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해 지기 전까지 보건소에서,
또 사업장에서 30~50Km 떨어진 필드에서 각각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다.

블랜타이어 시내보다 기온과 습도가 훨씬 높은 곳이라 가만히 있어도 푹푹 찌는 살인더위에
나는 사업장에 갈 때 마다 전의를 상실하여(?) 넋 놓고 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닌데
이들은 감자 한 덩이, 옥수수 한 자루 먹고도 자전거로 하루 몇 십 킬로 되는 거리를 거뜬히 달려
여러 마을을 다니고, 오후 늦게까지 말라리아 환자들을 돌본다.
더 좋은 것 먹고, 더 좋은 곳에서 생활하는 나보다 더 건강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그들이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

매번 사업장에 갈 때마다 실감하는 것은 마을 주민들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지역 보건소보다
우리 단체에서 운영하는 말라리아 보건소를 더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등대복지회의 말라리아 보건소가 그들의 생명줄이라도 된 것 마냥 힘겹게
그 끈을 잡고 있는 것 같은 환자들을 마주 할 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만큼 우리 단체의 신뢰도와 명성이 이 지역에 널리 알려지고,
프로젝트 시행이 잘되고 있다는 의미겠지만 매일 말라리아와 각종 질병으로 보건소를 찾은
마을 주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보건소를 볼 때 마다 이네들의 마주한 현실에 깊은 한숨이 나온다.

늘 약품과 장비가 부족한 국가 보건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줄어들지 않는 환자 수...

말라리아는 재발이 흔한 질병이기에 지구상에 모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늘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미 3년, 또 앞으로 3년 동안 시행 될 우리 단체의 프로젝트로 이 지역 마을 주민들이 얼마만큼
말라리아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매일 스스로에게 던지며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3년간 많은 생명을 구하고 예방효과도 있었지만 말라리아 근절을 위한 영구적인 대책은 없을까?’라는...
그러다 결국 내려지는 결론은
“할 수만 있다면 이들의 가난과 고통의 근원인 말라리아모기의 씨를 말려버리고 싶어!!” 라는 것이지만..

“아중구!”

오늘도 보건소에서 만난 예쁜 꼬마 환자를 향해 손을 흔든다.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꼬마 환자가 울 듯 말 듯 표정을 지으면 나는 우어헝~ 하고
부러 우는 흉내를 낸다. 그러면 모든 꼬마환자들 열이면 열, ‘얘 왜이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울려던 경계태세를 늦추고 내 눈을 마주 본다.

“너 여기 다신 오지 마~.”

나는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니 꼬마 환자에게 처방전은 줄 수 없고 최선을 다해,
그리고 진심을 다해 한국말로 이렇게 얘기한다. 다시는 아파서 보건소에 오지 말라고 하는,
일종의 주문 같은 나만의 처방전이랄까. 효력이 있는 지 없는 지는 아직 확인 된 바 없다.

그래도 몸이 아프면 찾아 올 수 있는 보건소가 있음에,
진료를 받고 약을 먹은 내 아이가, 내 아내가, 내 가족이 오늘 하루 더 내 곁에서
살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 단체가 이 지역에서 말라리아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그래, 그것 말고 또 다른 큰 이유가 있을까.

앞으로 3년, 내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 단체의 프로젝트로 일어날 이곳의 변화가,
또 그 변화를 통해 일어날 나 스스로의 변화를 기대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언제나 제 자리 같지만 계속 걷다 보고, 또 뛰다보면 목적한 그곳에 도착 해 있을 것이다.
그 도착지는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