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다이어리

등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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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을 향한 뜨거운 열정! 제3차 해외의료봉사

작성자
lighthouse
작성일
2019-05-10 10:03
조회
7004
작성자: 박민영
작성일: 2013-02-20



미국이나 유럽에서 기죽어 있던 한국인들의 어깨가 당당히 펴지는 곳 중의 하나가 동남
아시아의 필리핀일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세계 어디건 한류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져 있는 시기에 필리핀에선 일반 한국인들도 거의 연예인 수준의 대접과
환대를 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필리핀을 여행 한 나라 중 단연 최고로 꼽는 이유도 그것이다.
한국에선 평범한 축에 속하는, 혹은 별 눈에 띄지도 않을 뿐더러 간혹 못.생.겼.다,
라는 말까지 듣는 외모가 필리핀에선 그들보다 좀 더 피부색이 하얗다는 이유로,
눈 크기가 작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길거리를 지나가도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으며
'뷰티풀 걸!'이라고 칭송을 받았다. 우리 부모님 말고 세상 누가 나를 공주대접 해준단 말인가!
무조건적인 그들의 칭찬과 관심에 어깨가 으쓱해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마력의 필리핀이란 나라였다.

그래서일까. 한창 필리핀 어학연수가 유행하던 대학시절,
나는 약 3개월간 필리핀 세부에서 체류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짧은 기간 느꼈던 필리핀과
그 곳 사람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추억은 나로 하여금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매년 휴가기간이면
여지없이 필리핀 세부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해변과 값싼 해양스포츠, 풍부하고 맛있는 먹을거리들, 새콤달콤한 열대과일...
그리고 언제나 친절하고 호의적인 사람들... 1년에 한 차례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위안이자 활력소가 되던,
그저 내게는 좋은 휴양지기만 한 곳에 의료봉사활동이라니.
그래서 그런지 이번 구정 연휴 마닐라 행은 뭔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늘 챙겨가던 수영복과 스노클을 놓고 가는 것도 중요한 준비물을 빼놓고 가는 것처럼 불안했다.

2월 8일. 영하 17도의 추위로 꽁꽁 얼어 붙어있던 대한민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을 날라 와 도착한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쾌청한 날씨로
우리 봉사단을 맞아주었다. 하루에 극과 극인 두 계절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도 되고,
세부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나만 알 수 있는 필리핀 특유의 냄새가
그때서야 코끝을 타고 올라오는데 멀리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 온 귀향인의 감격마저 느꼈다.

점심을 먹고 짐을 푸른 뒤,
봉사활동 장소인 나보타스 해상촌으로 사전답사를 나섰다.
나는 올해로 3회 째 맞는 의료봉사에 등대복지회의 직원으로 처음 참석하는 것이지만,
봉사단은 2011년 구정부터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다음날부터 본인들이 의료봉사를 할 곳을
사전답사하는 그들의 모습에선 노련함마저 느껴졌다.

주민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사업장 주변의 한 마을을 방문했는데
한국에서 사진과 영상자료로만 접해오던 나보타스 해상 판자촌은 상상보다 더 열악한 모습이었다.
지난 해 태풍이 휩쓸고 간 마을은 한창 복구 중이었지만 워낙 피해규모가 컸기 때문에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얼기설기 나무를 엮어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불안한 집,
빈 공간 없이 쓰레기로 가득 메워져 있는 주변환경... 성인 남자의 힘으로 조금만 흔들면
금세 무너져 땅으로 꺼질 것 같은 집에서 한 두 사람도 아닌,
다섯 명 이상의 가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쓰레기와 오물들이 한 데 섞여 오염되고 있는 바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더위 속에
숨을 쉬고 있기조차 힘든데 깨끗함과 청결함이란 단어는 오래전부터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 곳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순수하고 맑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불행한 눈빛으로 하루하루 불평불만 속에서 살아도 모자랄 그네들이,
더 좋은 환경 속에 움켜쥐고 사는 것들이 많은 우리보다 갑절은 행복 해 보이는 모습에
의아함이 들 정도였다.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거리고, 시비를 걸기 바쁘던 곳에서의 삶이 익숙한 나에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심 없이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손을 흔들며 웃어주던 사람들...
일정에만 쫓기지 않는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스스럼없이 그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음날, 봉사단은 어제 방문했던 마을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는 탄자 고등학교에서 아침 일찍 의료진료를 시작했다.
도착 전부터 소문을 듣고 찾아 온 마을 사람들이 학교 정문에서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미 2년 전부터 한국의료봉사자들의 사랑과 온정의 손길을 체험했던 나보타스 주민들은
올해도 이어질 봉사단의 열정과 사랑에 기대가 큰 모습들이었다.

소아과, 내과, 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피부과, 임상병리, 초음파 등...
작은 고등학교에 임시로 만든 간이병원이 세워졌다.
주민들은 접수부터 각 과별로 이동하여 진료를 받고 나갈 때까지 질서정연하게 행동했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 어떤 소란이나 다툼도 일어나지 않는 모습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일 년에 운이 좋으면 한 두 차례, 우리 같은 해외 의료봉사단이 방문해야 아픈 몸을 치료 받을 수 있는 사람들.
이마저도 자기 차례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므로
으레 새치기라든지 소동이 일어날 것을 미리 짐작한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차분한 그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끼니마저 거르고 열정으로 환자들을 진료하던 봉사단들의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점점 몰려들고 많아지는 환자들.
뜨거워지는 날씨에 짜증한 번,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초지일관 웃음으로 환자들을 대하고
한 명이라도 더 진료하려고 애를 쓰는 의료봉사단들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산 공부가 되는 것 같았다.

외과나 정형외과에서 크고 작은 수술을 진행한 것을 보는 일도 뿌듯한 일이었다.
종양을 앓던 중년 남자의 종양을 제거하고, 활막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해 온 노인의 무릎에서 물을 빼내는 등,
봉사단이 아니었으면 평생을 아픔으로 신음했을 그들이 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내 앓던 이가 빠지는 시원함마저 느꼈다.

둘째 날 봉사단은 등대복지회의 협력단체인 Tulay 커뮤니케이션 센터에서 진료를 했다.
노인과 임산부, 아동 등 주로 취약계층을 위주로 많은 주민들이 진료를 받았다.
특히 쉴 새 없이 환자들로 붐비던 소아과의 전경과 그곳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갓난아기들을 안고
어르던 엄마들의 모습, 한 명이라도 더 진료하기 위해 바쁘게 손과 발을 움직이던
소아과 이원희 선생님과 옆에서 어시스트를 하던 봉사단들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비타민과 영양부족으로 성장이 더디고 잔병치레가 많은 아기들이 수액을 맞을 때,
안도감을 느끼며 뿌듯하게 웃던 엄마들의 선한 눈매도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떠나는 마지막 날은 일정 상, 나보타스 시청 앞에서 오전진료만 진행하였다.
그동안 등대복지회와 한국여의료인회에서는 나보타스 시와 협력하여 2011년부터 시청 앞 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진료를 봐왔다고 했다.
한국 의료인들의 열정에 감동한 나보타스 시장은 그날도 진료 전, 봉사단을 찾아 와 인사를 건네며
봉사단의 방문에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다.

사흘간 진행 된 봉사일정에서 2,300여명의 나보타스 주민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봉사단은 5천 건 이상의 진료건수를 기록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봉사단과 주민들 모두 무사무탈히 의료봉사를 마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떠나는 길, 모두들 아픈 주민들을 치료하기 위해 도와주는 마음으로 왔다가 겸손한 마음이 되어
돌아간다는 봉사단의 고백에 나도 마음이 숙연해 졌다.
가난하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나보타스 주민들에게서 오히려 병들었던 내 마음이 치유를 받고 간다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리며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았던,
교만으로 병들어 있었던 마음이 작아져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태어난 나라, 내 부모와 형제, 관계, 내 주변 환경은 내가 선택할 수도,
의지적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값없이 선물처럼 거저 주어진 것들로 인해 옆에 있는 그 누군가보다
내게 주어진 것들이 풍족하다면, 그것은 자랑하고 뽐내라는 것이 아니라
응당 나보다 조금 부족한 자들에게 나눠야 하는 것임을 온 몸으로 깨닫고 느끼게 된 시간들이었다.

등대복지회에서는 이번 년도를 마지막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지원해 주는
'필리핀 나보타스 해상 판자촌 청소년 자립자활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게 된다.
다년간의 사업으로 조금씩 변화되어 가고 있는 나보타스에 사업의 일환으로 함께 시작되었던
등대복지회-한국여의료인회 의료봉사가 마을 주민들을 치료하고 나보타스를 변화시키는 일에
작은 촉매제가 되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프로그램은 끝나지만 필리핀 나보타스를 향한
등대복지회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듯, 이곳의 주민들을 향한 의료봉사단의 뜨거운 열정도 식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 한국 의료봉사단의 작은 사랑과 열정에 몸이 아픈 주민들이 치료 받고 건강해진 것처럼,
나보타스 주민들도 필리핀의 희망 등대가 되어 고통 받고 죽어가는 필리핀의 이웃들,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그 사랑을 도로 주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늘 아름답고 좋은 추억만 안겨주었던 내 사랑 필리핀.

이번 의료봉사를 통해 또 한 번 나는 필리핀과 뜨거운 사랑에 빠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