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 보건의료진 한국 방문 기념사진_맨 왼쪽이 필자]
작성자: 2024년 YP 박찬민
Chpt. 1.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6)
돌이켜보면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을 따라 살아왔었다.
남들 따라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그러기에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뚜렷한 주관도 없었다.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내고, 또 졸업을 앞두고 ‘남들 따라’ 인턴 경험을 쌓을 차례였다.
방학이 시작되고, 확실한 목표 없이 구직 사이트에서 ‘인턴’을 검색하며 떠도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던 중, 청년에게 국제개발협력 사업수행기관에서의 근로 경험을 제공하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 ODA YP
(국제개발협력 영프로페셔널)’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직전 학기에 ‘UN 지속가능 개발목표’나 ‘북한의 사회와 국제협력’에
대한 수업을 나름 흥미 있게 들었던 나는, YP사업 기관별 공고를 보다, 그중 아프리카 말라위의 보건의료 개선사업과 북한 지원
사업들이 인상이 깊었기에 등대복지회에 지원했다.
Chpt. 2.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게 하라. (마태복음 5:16)
처음 입사했을 때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내겐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서 겪는 첫 사회생활이자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쉬운 일에도 실수가 이어졌고, 간단한 일도 쉽게 처리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화도 많이 났던 것 같다. 동료이자 선임 YP
간사님께 매일 퇴근하며 고민을 말하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친절한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적응해 갈 때쯤, 실무에 투입되면서 아프리카 말라위 현지에서 전해 온 소식들은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것보다도 훨씬 더 가혹했다.
물이 부족해 흙탕물을 마시는 사람들, 강가에 물을 뜨러 갔다가 악어에 물려 죽는 사람들,
병원이 없고, 의사가 부족하며, 의사가 있더라도 약품과 장비가 없어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
처음에는 ‘왜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가’라는 현실에 화가 났다.
그리고 이는 곧 어디서부터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를 거대한 현실 앞에 무력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등대복지회가 2010년부터 말라위의 형제들을 섬겨 왔고, 그 기간 수많은 사람이 도움과 위로를 받았음을,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에서 내일을 위한 씨앗을 뿌리고 있음을, 업무를 하며, 또 총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되었다. 식량을 받은
사람들, 진료받는 아이들, 마을에 새로 지어진 우물에 노래하고 춤추며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꼈고, 그때부터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선명한 꿈이 생겼다.
Chpt 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꿈이 뚜렷해지고 난 후부터는 더욱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총장님과, 어느덧 정직원이 되신 선임 YP 간사님께서는 내가 일을 잘 배워나갈 수 있도록 적절한 양과 난이도의 업무를 부여하려
하셨다. 세심한 배려만큼, 어떠한 일이 주어지든지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다.
현지 사회와 보건의료 실태조사, 데이터 정리 및 문서화, 사업 관련 지출 서류를 작성하고,
후원자분들을 응대하고 소식지를 보내는 일까지...
그렇게 일을 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었는데, 총장님께서 타 기관의 ODA 관련 기본교육 과정이나 모금교육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셨고, 여러 편의를 봐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교육에 성실히 참여하고 실무에 적용하면서,
ODA 분야의 업무수행 능력을 조금씩 쌓아 갈 수 있었다.
또 행정안전부 공익활동사업 워크숍이나 남북협력민간단체 회의에도 참석하면서, 현직에 계신 활동가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하며 나도 저런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 사족으로, 이 과정에서 만난 활동가분들이
소속을 밝히면 더 친절히 대해 주시고, 단체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때 등대복지회가 많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말라위 보건의료인력을 한국에 초청한 일이었다.
짧은 연수 기간에도 불구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이 많았고,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곤란했던 적도 있었지만,
보건인력들이 연수 후 감사 인사와 함께 말라위의 보건 인프라 개선에 잘 참고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간접적인 방법으로나마 말라위인들의 삶에 작은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했다.
출국일 늦은 밤, 공항에서 연수기간 동안 부쩍 친해진 네노현 보건국장과 주먹 인사를 하며
“꼭 내 꿈을 이뤄서 말라위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한 약속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Chpt. 4.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눈이 내리던 아주 추운 2월의 첫날 입사해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8월의 어느 날,
나는 7개월간 많이 정든 회사를 떠나 다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올해 KOICA ODA YP로 등대복지회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인생을 걸고 이루고 싶은 선명한 꿈이 생겼고, 앞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 될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한 아름 안고 떠난다.
부족한 나로 인해 고생했을 텐데도 늘 따뜻하게 날 맞아주고 걱정해주셨던 사무총장님과
선·후임 간사님, 따뜻한 말씀과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 이사장님을 포함한 이사님들,
그리고 등대의 환한 불빛을 꺼지지 않게 지켜주신 ‘등대지기’ 모든 후원자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 다양한 업무를 하며 여러 경험을 쌓은 것,
수많은 사람을 만난 것 모두 하나님의 정하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으면서
어둠이 갈라놓은 세상에 밝은 빛이 되고 싶다고 기도했었다.
강산이 바뀌는 세월을 지나, 20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또 어떠한 어른이 되어갈 것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며 글을 마친다.
[민중한의원 전통의학 체험을 마치고]
[말라위 의료진 초청 연수_연세 세브란스 국제진료소 앞에서]
[말라위 보건의료진 한국 방문 기념사진_맨 왼쪽이 필자]
작성자: 2024년 YP 박찬민
Chpt. 1.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6)
돌이켜보면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을 따라 살아왔었다.
남들 따라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그러기에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뚜렷한 주관도 없었다.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내고, 또 졸업을 앞두고 ‘남들 따라’ 인턴 경험을 쌓을 차례였다.
방학이 시작되고, 확실한 목표 없이 구직 사이트에서 ‘인턴’을 검색하며 떠도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던 중, 청년에게 국제개발협력 사업수행기관에서의 근로 경험을 제공하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 ODA YP
(국제개발협력 영프로페셔널)’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직전 학기에 ‘UN 지속가능 개발목표’나 ‘북한의 사회와 국제협력’에
대한 수업을 나름 흥미 있게 들었던 나는, YP사업 기관별 공고를 보다, 그중 아프리카 말라위의 보건의료 개선사업과 북한 지원
사업들이 인상이 깊었기에 등대복지회에 지원했다.
Chpt. 2.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게 하라. (마태복음 5:16)
처음 입사했을 때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내겐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서 겪는 첫 사회생활이자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쉬운 일에도 실수가 이어졌고, 간단한 일도 쉽게 처리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화도 많이 났던 것 같다. 동료이자 선임 YP
간사님께 매일 퇴근하며 고민을 말하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친절한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적응해 갈 때쯤, 실무에 투입되면서 아프리카 말라위 현지에서 전해 온 소식들은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것보다도 훨씬 더 가혹했다.
물이 부족해 흙탕물을 마시는 사람들, 강가에 물을 뜨러 갔다가 악어에 물려 죽는 사람들,
병원이 없고, 의사가 부족하며, 의사가 있더라도 약품과 장비가 없어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
처음에는 ‘왜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가’라는 현실에 화가 났다.
그리고 이는 곧 어디서부터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를 거대한 현실 앞에 무력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등대복지회가 2010년부터 말라위의 형제들을 섬겨 왔고, 그 기간 수많은 사람이 도움과 위로를 받았음을,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에서 내일을 위한 씨앗을 뿌리고 있음을, 업무를 하며, 또 총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되었다. 식량을 받은
사람들, 진료받는 아이들, 마을에 새로 지어진 우물에 노래하고 춤추며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꼈고, 그때부터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선명한 꿈이 생겼다.
Chpt 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꿈이 뚜렷해지고 난 후부터는 더욱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총장님과, 어느덧 정직원이 되신 선임 YP 간사님께서는 내가 일을 잘 배워나갈 수 있도록 적절한 양과 난이도의 업무를 부여하려
하셨다. 세심한 배려만큼, 어떠한 일이 주어지든지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다.
현지 사회와 보건의료 실태조사, 데이터 정리 및 문서화, 사업 관련 지출 서류를 작성하고,
후원자분들을 응대하고 소식지를 보내는 일까지...
그렇게 일을 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었는데, 총장님께서 타 기관의 ODA 관련 기본교육 과정이나 모금교육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셨고, 여러 편의를 봐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교육에 성실히 참여하고 실무에 적용하면서,
ODA 분야의 업무수행 능력을 조금씩 쌓아 갈 수 있었다.
또 행정안전부 공익활동사업 워크숍이나 남북협력민간단체 회의에도 참석하면서, 현직에 계신 활동가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하며 나도 저런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 사족으로, 이 과정에서 만난 활동가분들이
소속을 밝히면 더 친절히 대해 주시고, 단체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때 등대복지회가 많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말라위 보건의료인력을 한국에 초청한 일이었다.
짧은 연수 기간에도 불구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이 많았고,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곤란했던 적도 있었지만,
보건인력들이 연수 후 감사 인사와 함께 말라위의 보건 인프라 개선에 잘 참고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간접적인 방법으로나마 말라위인들의 삶에 작은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했다.
출국일 늦은 밤, 공항에서 연수기간 동안 부쩍 친해진 네노현 보건국장과 주먹 인사를 하며
“꼭 내 꿈을 이뤄서 말라위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한 약속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Chpt. 4.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눈이 내리던 아주 추운 2월의 첫날 입사해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8월의 어느 날,
나는 7개월간 많이 정든 회사를 떠나 다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올해 KOICA ODA YP로 등대복지회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인생을 걸고 이루고 싶은 선명한 꿈이 생겼고, 앞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 될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한 아름 안고 떠난다.
부족한 나로 인해 고생했을 텐데도 늘 따뜻하게 날 맞아주고 걱정해주셨던 사무총장님과
선·후임 간사님, 따뜻한 말씀과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 이사장님을 포함한 이사님들,
그리고 등대의 환한 불빛을 꺼지지 않게 지켜주신 ‘등대지기’ 모든 후원자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 다양한 업무를 하며 여러 경험을 쌓은 것,
수많은 사람을 만난 것 모두 하나님의 정하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으면서
어둠이 갈라놓은 세상에 밝은 빛이 되고 싶다고 기도했었다.
강산이 바뀌는 세월을 지나, 20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또 어떠한 어른이 되어갈 것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며 글을 마친다.
[민중한의원 전통의학 체험을 마치고]
[말라위 의료진 초청 연수_연세 세브란스 국제진료소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