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발자취를 뒤돌아보며...

관리자
2024-02-26

작성자: 조일 사무국장
작성일: 2017-06-12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프리카 남단, 세계 최빈국.
듣기에도 생소한 나라 ‘말라위’ 땅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황폐한 땅, 건기의 한 가운데 풀 한포기 자라나기 어려울 것 같은 이 곳에서,
겹겹이 풀어 나가야 할 과제들을 앞에 두고 느낀 그 막막함이란..
언론을 통해 혹은 TV 영상으로 흔히 접하던 아프리카의 상징적인 이미지, 울창한 수림에 야생동물이 뛰어놀고
해거름 아름다운 석양이 눈부신 그 진기한 풍경 대신, 눈앞에 마주친 건
빈곤과 질병에 신음하는 아프리카의 고통스런 현실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과 두려움에 실망보다는 전사와 같은 비장함으로 무장을 해야 했다.

"질병으로 쌓여가는 주검의 현장에서 말라리아와의 사투를 준비하다"

몇 번의 건기와 우기를 보내고, 이제는 아주 낯익은 풍경이 되어 버렸지만 이곳에선 마치 시간이 정체된 듯하다.
늘 같은 모습의 거리, 기후, 사람들…
1일 평균 소득 $1 미만 인구가 42%, 30초마다 한 명씩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땅.
그 중에서도 오지, 137개 마을이 모여 사는 블렌타이어 지역의 어느 가난한 농촌.
등대복지회가 말라리아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문명의 이기 없이 오로지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곳.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을 여는 새들의 노랫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습한 저지대, 말라리아 모기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자연환경으로
우리의 발길이 닿기 전, 매년 700명 이상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어갔다.
시골 오지에 보건소를 건립하고 수년째 말라리아 퇴치사업을 벌여온 결과, 대상 지역의 말라리아 사망자수는
주민들이 '기적'이라 부를 만큼 현저하게 줄었다. 그러나 말라리아는 지구상 말라리아 모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끝이 없는 질병이기에 늘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교통수단 부재로 보건소를 찾지 못하는 오지의 환자들은 아직도 사각지대에 속수무책으로 방치되어 있으며,
우리가 떠나면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차기 사업을 준비하며 출구전략 마련에 고심 중이다.
‘내놓으라는 국제단체들도 모두 두손 들고 물러난 곳인데 어찌 한국의 한 작은 NGO가 겁도 없이 뛰어 들려 하느냐,
말라리아가 어떤 질병인줄 아느냐, 업적을 기대한다면 포기하고 순수하게 생명을 구할 마음이면 들어가라!’
남북관계 악화로 그동안 주력해 왔던 대북사업이 주춤하던 시기,
또 다른 하나님의 자녀인 해외 소외계층을 위한 구호사업에 뛰어들면서, 이러한 충고는 곧 좌절로 다가왔다.

그러나 망설임도 잠시, 무모하리 만큼의 용기로 발걸음을 내딛고 말았다.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난관도 모른 채.
주위의 우려와 만류를 뒤로하고 사업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숨결이 다시 살아나는 곳, 치브웨야 마을 ‘등대복지회 보건소(LHF Clinic)’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는 현지 청년 모니터요원들. 신실한 등대복지회의 일꾼들이다.
작열하는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 숨 막힐 듯한 복장으로 전신 무장을 한 채,
각 가정마다 살충제 방역을 하고 모기장 설치와 이동진료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한다.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곳에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메마른 땅에
우물 시추로 생명수를 공급하는 등 지역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척박한 땅에 희망의 싹이 돋듯, 어린 생명이 살아나고 환자들의 얼굴에는 다시 화색이 돈다.
외계인 보듯 낯선 우리를 보며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들이 이제 품에 와 안기며,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사람들이, "지꼬모!“라며 연신 한국인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한다.

"위기와 절망 끝에서 심은 희망, 생명의 싹을 틔우다! 우리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놀랍고 감사하기만 하다.
곳곳에 위험과 복병이 도사리고 있던 순간들..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적 차이, 빈곤 속에서도 작은 것에 만족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이지만,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베푼 선함이 실망으로 되돌아올 때,
미로를 헤매듯 출구가 보이지 않는 문제들로 한계상황에 부딪혔을 때,
아프리카 시골의 거친 환경과 열악한 사업 조건들, 부조리와 부패에 맞서 싸우면서
결단과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찌할 바 몰라 애태우던 때가 몇 번이었던 지..
사업 초기, 여러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기억하기도 싫은 경험들이
이젠 귀중한 자산이자 사업의 밑거름이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아직도 막막하지만, 어려울 때마다 용기 주시고 길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늘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힘을 냅니다.
새로운 도전과 도약을 준비하며, 등대복지회 후원자 한 분 한 분의 정성어린 손길,
함께하는 KOICA의 지원과 협조에도 큰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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